소 - 牛 "己丑年 소의해"
첫째 덕으로는 서두르지 않고 꾸준한 것이다.
선조때 정승 정탁(鄭琢)이 스승인 남명 조식(曺植)의 문하를
떠나올때 하직 인사를 올리자 스승은 "자네를 위해 뒤안에
소 한 마리 매어 놓았으니 상경할 때 몰고 가게나" 했다.
이 말에 뒤안을 가 보았으나 매어 놓았다던 소가 없었다.
이에 정탁이 어리둥절해 하자 남명이 말했다.
"군은 언어 와 너의 기가 너무 민첩하고 날카로우니 날랜
말과 같느니라, 말은 빨리가나 넘어지기 쉬운 것이니
더디고 꾸준하고 순한것을 참작해야 능히 멀리 갈 수 있는
것이라 내가 군에게 소를 준다는 것일세"했다.
곧 남명이 준다는 것은 마음의 소 였던 것이다.
정탁은 평생 이 스승이 준 마음의 소를 타고 살았으며 그
때문에 벼슬이 정승에까지 오르고 관직을 무난히 마쳤다고
말년에 자주 말했다.
이덕(二德)은 돌밭이건 진창이건 가리지도
피하지도 머뭇거리지도 않고 가는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장애물을 이리 저리 피해가는 인간과,
한번 방향을 정했으면 많은 장애가 있어도 그것을 극복하면서
한 방향으로 매진하는 인간이 있다면 소가 제시하는 인생은
후자라고 할 수 있다.
삼덕(三德)은 자신이 하는 일을 되새겨
그 잘못을 반성하며 되새김하는 것이다.
소는 먹이를 먹은 다음 조용히 반추(反芻)하며 되씹는다.
사덕(四德)은 자애로움이다.
언덕에 어미 소와 새끼 소가 나란히 누워있는 것을 보고
평화로움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어미 소가 새끼를 핥는 지독지애(?犢之愛)란 말도
생겨난 것이다.
음메~ 하고 송아지를 부르는 모양도 좋고 우두커니 서서
시름없이 꼬리를 휘둘러
"파리여 달아나라. 내 꼬리에 맞아 죽지 말아라" 하는
모양도 인자하다고 말한 것은 춘원 이광수이다.
오덕(五德)은 재물을 안겨다 주는 것이다.
소 꿈은 어떤 형태로든지 재산을 늘려 줄 길몽이다.
꿈 뿐 아니라 묘지 풍수에서도 소가 누워있는 와우형이면
자손이 부자가 될 것으로 예언했다.
육덕(六悳)은 불행과 병을 몰아 오는
귀신을 막아 주는 것이다.
쇠뼈다귀를 문전에 걸면 악귀가 집에 못 들어올 뿐 아니라
소의 코에 꿰는 코뚜레를 문전에 걸어 두어도 귀신이 무서워
도망치는 것으로 알았다.
칠덕(七德)은 잡다한 세상사에
초연하게 유유자적 함이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을 표방할 필요가 있을 때 반드시
소가 끼어 든다. 도교나 선인들이 소를 타고 나타남도
그 때문이다.
팔덕(八德)은 초월자의 과정을 인간에
교시하는 것이다.
속세로부터 선(禪)의 경지에 이르는
십우도(十牛圖)가 그것이다.
소를 찾아 나섰다가 소를 길들여 타고 돌아도는 동안
소를 잊어버리고 이어 자신도 잊어 초월의 본으로 돌아간다는
선불교의 반본환원(返本還元) 역시 소와 더불어 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 조계종의 개조인 지눌의 호가 목우자(牧牛子)요
만해 한용운의 호는 심우(尋牛)이다.
이렇게 소가 베푸는 덕을 입고 살아온 한국인이기에
황희 정승은 밭을 가는 두 마리 소의 근면함을 물음에
대한 답을 귓속말로 들었고, 한 말의 지사 황현은 소를 대놓고
꾸짖는 농부를 불러 잘못을 타일렀을 것이다.
따라서 일상사는 사생활에서
정치 경제를 주무르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소로부터 많이 배워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무엇보다
절실해지는 작금(昨今)이 아닐 수 없는것이다.
